GNOSIA

REVIEW

2023. 1. 28.

1인용 SF 마피아 게임 그노시아

 

기본적으로 혼자서 즐기는 마피아 게임으로 26000원인가? 하여튼 2만원대의 돈을 내면 최대 14명의 AI가 나랑 마피아 게임을 계속해서 해 준다. 낯선 사람과는 어색할 것 같고 친구들로만은 대규모 인원을 모으기 어려운 나같은 인간한테는 최적의 게임이다. 어몽어스는 5판도 못해봤지만 그노시아는 대충 120판정도 했다. (근데 사실 엔딩 보려면 100판 넘게 해야 해서 그렇다.)

 

우주가 배경이고, 이성체 그노스는 인간을 감염시켜 그노시아로 만든다. 이 그노시아가 인간을 매일 밤 한 명씩 습격한다. 선원들은 감염자인 그노시아를 찾아내 콜드슬립을 시키고, 모든 그노시아가 콜드슬립 되면 인간 측의 승리. 여기에 엔지니어(살아있는 사람이 인간인지 그노시아인지 판별), 닥터(콜드슬립한 사람이 인간인지 그노시아인지 판별), 수호천사(그노시아의 습격으로부터 한 명을 지킴), AC주의자(인간이지만 그노시아의 편을 들음), 선내대기인(서로 확실하게 시민임을 증명 가능한 두 사람), 버그(인간과 그노시아, 어느 쪽이 승리하든 마지막에 자신이 살아있으면 혼자 승리)같은 여러가지 역할도 존재한다. 마피아 게임의 기본적인 특수직들은 갖추어져 있는 느낌.

 

다만 AI들이다 보니까 누군가를 의심할 때 특별한 상황(심하게 대립하던 누군가가 그노시아에게 소멸됐다거나)이 아니라면 정해진 대사만 한다. 그래서 논의의 다양성에서 오는 재미같은 건 떨어지는 편…. 하지만 스킬이나 누가 누구를 편들고 의심하는지 보며 그노시아를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로 플레잉 게임이고 게임 자체의 메인 스토리가 존재해서 단순히 마피아 게임을 반복하는 게 아니라 게임을 진행하며 14명의 캐릭터들의 개인적인 이벤트 스토리를 들을 수 있고, 위에 서술했듯 조건을 만족하면 엔딩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메인은 마피아 게임이고 엔딩을 보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게임을 반복해야 하며 때로는 운에 따라 봐야하는 이벤트 스토리가 뜨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반복적인 진행에 취약하다면 게임이 괴로울 것 같기는 했다.

 

이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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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단순한 마피아 게임에 루프 설정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물론 마피아 게임은 즐겁긴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혼자 하는 거니까, 스토리 없이 계속해서 마피아 게임을 반복했다면 아마 10판도 못채우고 그냥 게임을 껐을 것 같다…. 스토리적인 당위성이 존재하니 게임을 계속 반복하게 되고, 반복하면서 특정 이벤트를 보고 더 흥미를 가지게 되고, 그게 다시 계속해서 게임을 반복하게 되는 동기가 되다 보니 구성을 참 잘 짰다 싶다. 거기에 은 열쇠의 특성에 따라 상당히 명확하게 제시되는 엔딩 조건(모든 캐릭터의 정보를 획득), 중복으로 존재하는 플레이어(나), 캐릭터들과의 이벤트 스토리에서 조금씩 던져지는 세계관 설정 등, 플레이어의 흥미를 끄는 소재가 많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 루프하며 루프를 벗어날 방법을 찾는 세츠는 사실 루프 중인 내가 세츠에게 은 열쇠를 주었고, 또 루프 중인 세츠가 나에게 은 열쇠를 주며 루프가 시작된다는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서로가 루프의 시작이었다면 엔딩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기에 수미상관적으로도 쌍이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

 

그렇지만 이 게임…. 캐릭터들 설정이 엄청나다. 거의 시리어스 커뮤니티 뛰는 기분이다. 부모가 영생을 위해 자식의 몸을 만들고 복제해 의식을 옮겨 차지하려고 하질 않나, <-이 부모의 가축인 캐릭터가 있질 않나, 고양이가 되기 위해 목에 구멍을 뚫고 고양이의 머리와 몸을 거기 연결해 감각을 고양이에게 맞추는 중인 친구나 미친 살육 인형도 있고… 설정이 정말 다양한데 고자극이다. (안 그런 친구도 있다.) 거기다 스테이터스가 존재하고 이 캐릭터들도 스테이터스를 가지기 때문에 서로 전혀 다른 행동양상을 지닌다는 게 재미있다. 나 빼고 다 AI기는 하지만 여러 종류의 AI를 앉혀놓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게임에서 천사를 만났음….

이 여인의 이름은 SQ. "헐 어떻게 사람 이름이 SQ?" 이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으나 사실 그녀는 위에서 말한 '부모가 영생을 살려고 복제배양한 자식 육체'에서 그 자식 육체고, 본래 인격이 없었지만 오랜 기간 배양시설에서 자라나며 육체에 인격이 깨어나게 된 경우다. SQ라는 이름도 그 배양된 육체의 번호를… 알파벳으로 부르는 거다….

 

이 친구는 어머니 마난의 의식이 들어있는데 완벽하게 들어있지 않다. 어머니의 인격이 깨어나는 건 그노시아일 때 뿐이고, 인간일 때는 SQ 본인의 인격으로 행동한다. 어느 쪽이든 거짓말을 잘 하고 이래저래 사람을 한 팀으로 만들었다가 뒷통수를 치기도 하는 여자지만 미워할 수가 없다…. 플레이어가 그노시아고 SQ가 인간일 때 둘이서 편을 먹고 살아남는 엔딩을 보면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SQ가 그노시아고 플레이어가 인간일 때 살아남으면 보는 엔딩도…. 개목걸이를 채워주는 여자? 없는 건 아니지만 흔치도 않다. 거기다 루프가 끝나고 그노시아의 습격이 없었던 우주에서는 무려 탐정으로 활동한댄다……. 너무 좋다…….

 

어머니 인격인 마난도…. 트루 엔딩에서 계속 의뭉스럽게 다뤄졌던 쿠크루시카가 사실 마난의 인격을 인형의 몸에 집어넣고 루프시켰다는 게 밝혀지면서 얽혀있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한번에 이해되기도 하고…. 그래서 좋았다. 스토리적으로 되게 재미있었음.

 

그렇지만 120번 넘게 루프하는 건 좀 힘들었다. 약간 지쳤음…. 비슷한 류의 게임(단판을 반복해야 하는)은 당분간 안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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